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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하루22

이제야 알았습니다, 따뜻한 하루 언니는 가족과의 연락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아버지가 가게에서 일을 심하게 시켰기 때문에 언니는 항상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을 때도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결혼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로 계속 사소한 싸움이 이어지다가 아버지와 언니는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 길로 언니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저는 언니에게 연락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본 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듯 매우 놀라거나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후, 집으로 언니가 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2020. 6. 11.
엄마의 반찬 가게, 따뜻한 하루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시면 항상 크게 벌리십니다. 맛은 아주 훌륭하지만, 손이 너무 큰 엄마는 항상 너무 많은 양을 만드십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아파트 주민들을 모두 불러서 오곡밥을 나눠드리기도 했고, 김장이라도 하는 날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김장김치에 수육을 먹여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밑반찬을 만들 때마다 반찬을 싸 들고 동네의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는 엄마를 볼 때마다 짠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힘들게 왜 저러실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가족들을 다 불러서 반찬가게를 꼭 해야겠다고 말씀하셨고 엄마의 성향을 잘 아는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반찬가게를 차리셨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내고도 엄마의 손 큰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원래 많이 퍼주면서도 다른 반찬까지 덤으로 포장해.. 2020. 6. 10.
내겐 특별한 할머니, 따뜻한 하루 저는 대학생 시절 복지관에 있는 경로 식당에서 자원봉사를 자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도 어르신들도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그중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제가 외국에 있는 손주와 많이 닮았다면서 항상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 한동안 식당에 오시질 않아 걱정이 되어서 주변에 다른 어르신께 사정을 여쭤봤습니다. “요즘 밥맛이 없다면서 함께 가자고 해도 도통 오지를 않네.” 마음속으로 걱정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다시 식당에 오셨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제가 먼저 할머니께 다가가서 손을 잡아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몇 년 전 중풍 후유증으로 한동안 몸이 안 좋아져서 못 나오게 되셨다면서 이제 괜찮다.. 2020. 6. 9.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따뜻한 하루 중학교 졸업식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잔뜩 와서 축하해주었기 때문에 모든 친구들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다들 누구랄 것 없이 꽃다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교문 쪽을 보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꽃다발을 든 채 걸어오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보였습니다.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다섯 남매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연세가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복까지 입고 오셨으니… 저는 어딘가로 숨고 싶었습니다. 한참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나왔더니 어머니는 제 책상 옆에서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저는 꽃다발을 전해주려는 어머니를 반사적으로 피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상처 받은 얼굴… 그때는 왜 철없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너무 후회됩니다. 졸업식 꽃다발을 주려는 어머니와 안 .. 2020. 6. 8.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 따뜻한 하루 뛰어쓰기도없고쉼표도없고 마침표도없는글을읽는것은 매우불편한일입니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위에 글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문장을 읽고 쓰면서 지내고 있을지도 혹시 모릅니다. 1886년 7월 23세의 청년이었던 호머 헐버트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서양문화와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고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조선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호머 헐버트는 조선인보다도 조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책은 순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순간 미국인 선교사가 아.. 2020. 6. 7.
제물포 고등학교의 무감독 시험, 따뜻한 하루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커닝하다가 걸리면 0점 처리다.” 학창 시절 시험 시간에 누구라도 한 번 이상을 들어봤을 말입니다. 그런데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전부터 제물포 고등학교 시험 시간에는 시험감독을 하시는 선생님이 없습니다. 선서! 무감독 고사는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감독 고사의 정신을 생명으로 압니다.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치르기 직전 학생들이 선서하고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주고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시험 종료 10분 전 선생님은 돌아와 답안지를 회수하고 시험을 마칩니다. 1954년 제물포 고등학교 개교 당시.. 2020. 6. 6.
백작과 기사의 체스 대결, 따뜻한 하루 옛날, 뛰어난 체스 실력을 갖춘 백작이 있었는데 한 떠돌이 기사가 찾아와 백작과 체스를 한판 두기를 청했습니다. 체스를 좋아하는 백작은 기사의 청을 받아들였는데 기사는 체스의 승패에 따른 내기를 걸 것도 요청했습니다. 내기가 걸리면 승부가 더 재미있어질 것이라 생각한 백작은 그 요청도 받아들여, 백작이 이기면 기사의 말을 가지게 되고 기사가 이기면 한 달 치 식량을 얻기로 하는 내기 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사의 체스 실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승부의 결과는 백작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모처럼 즐거운 체스를 둔 백작은 내기에 걸린 기사의 말을 받지 않고 그냥 돌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사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백작님. 제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기에 저는 약속대로 말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2020. 6. 5.
보석보다 값진 교육, 따뜻한 하루 ‘탈무드’의 한 일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상점에서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번 입어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의 생각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보석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산 옷 주머니에 들어있었잖아. 그러니 내가 가져도 될 거야.’ ‘그래도 이건 내 것이 아닌데…. 빨리 돌려주는 게 맞겠지.’ 양면의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그 사람은 지혜로운 현자를 찾아가서 사실 이야기를 하자 현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산 것은 외투이지 보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돌려주는 게 맞습니다. 다만 상점에 가서 보석을 돌려줄 때는 꼭 자녀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리하면 어떤 보석보다 몇 배 귀중한 것을 .. 2020. 6. 4.